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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의 즐거움
바야흐로 스산한 찬바람이 몰려오는 계절이다. 어쩌면 이 추위는 인간들이 좀 냉정해지라는 의미에서 불어오는 건 아닐까?
오년마다 한번씩 정치꾼들의 여린 새가슴들을 설레게 하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참으로 답답하다. 그대들은 어찌해서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모른 체 지나치려 하는가 말이다. 어찌 이런 날마다 오지도 않는 신명나는 장터의 재미를 정치꾼들의 것으로만 던져 놓느냔 말이다. 그대들이, 한편의 걸작영화를, 한 곡조의 명음반을, 한권의 위대한 문학작품을 그냥 지나쳐가는 것이 그만큼의 인생의 즐거음을 놓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듯이, 아무리 작게 말해도 이런 생활의 즐거움 그냥 지나치는 것은 확실히 무지하고 몽매한 것이리라.
학생집단 것이 상아탑의 주인이자, 유행의 첨병이자, 시대의 리트머스이자, 사회혁명의 전위일 수 있던 이유는 ..... 놀랍게도 그대들이 놀랍도록 ‘한가한’ 인간들이고, 비할 때 없이 나태한 ‘당대의 한량’들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논증해야하는 책임이 본인에게 있으매도, 당 논증이 자신의 지난 일주일만 돌아봐도 그다지 어렵지 깨닫고, 막상 이 논증 시작하면 별 쓸모도 없는 군소리가 느릿느릿 늘어질 것이 뻔해, 일단 지면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각설하겠다. 아쉽고 억울해도 니들이 참아달라.
다시 돌아와, 이 축복받은 집단에게 사회가 안겨주는 권리도, 의무도 늘 중한데 반해,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되묻는 책임이 중한 적은 별로 없었다. 비록 개별적인 징벌은 있을지 언정, 늘 언제나 앞으로도 이 집단에 대한 사회의 보살핌과 응석받기는 계속 될 것임이 확실하다. 따지고 들자면 선후과 뒤섞여, 원래가 그렇게 한량하고 축복받은 것들이 당 ‘집단’에 속하데 된 것인지도 모르지.....
정통성없던 이 땅의 권력은 학원자유화라는 꽃다발에 ‘학원 우민화’라는 벌레가 기어 나오는 부작용을 기대했고, 이런 추잡한 기대에 부응한 교육자본가들의 덕분에 이 땅의 상아탑은 사회의 노동유휴인력이나 챙겨주는 실업자집합소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이건 자칭 사학명문이건 국립명문이건 모든 우물안 개구리들에게도 다 마찬가지다.
본인 역시 그런 보람 없는 세월에 회한도 있지만, 지금 톡톡히 고생하며 되갚고 있으니 이점 그대들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래서 그렇게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 시퍼런 사슬을 자기 스스로 챙겨 목에 감아 거는 정말 무지몽매한 판단으로 선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이 그 못난 결정을 자신의 자손만대에 대대로 물려주겠다는 어림없는 물귀신근성은 이제 좀 잊어버리자.
다른 다 제쳐두고 말머리에서 이야기했듯이 정치라는 것 야그를 좀 하려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속 빈 벌판에 수백만명을 세워놓고 사이비종교행사의 들러리로 만들어 버리던 바리리코트들의 팔뚝질만이 정치는 아니고, 뻔뻔한 얼굴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여의도 철재들의 추잡한 난장질만이 정치는 아니다. 그대들 중 이 정도도 모르는 치가 있을까. 모르겠다면 그 알량한 투표용지조차 반납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그것이 전부다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일부라는 것이다. 아침밥상머리에도 있고, 강의실과 도서관의 공기속에도 있고, 당구대와 피씨게임나라에도 있다. 그대들이 늘 정치적인 삶을 살면서 왜 ‘정치’이름으로 구체화된 장에는 혐오감만 던지는가.
내가 던진 한표가 또는 내가 포기한 한표가 결국 내 등록금을 결정하고 알바비를 결정하고 피씨방 사용료를 결정하는 것에는 왜 무지한가.
정치꾼들의 추잡한 짓거리들이 정치행위가 아니라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정치이다. 인간이 먹고사는 기본적 토대위에 행하는 그 모든 행위들 중 정치는 선택되어진 ‘집중’이다. 그런 집중되고 핵심적인 장을 모르쇠로 내버려두다면 결국 토대까지 썩어가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집중’중 ‘집중’인 선거에는 잘된 한판게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빅게임일 수 밖에 없으면 자신의 투표권은 그 게임의 진정한 참여자임을 증명하는 징표이다. ‘선거경마주의’니 어쩌니 하며 비꼼을 당할지라도 티비선거개표방속 박진감은 한국시리즈 못지 않다. 잘된 한판 위해서 실컷들 재미나게 즐겨야 한다.
2. 상식적인 너무도 상식적인
분명 정치행위 중 가장 쌈박하고 분명하고 적나라한 것이 선거와 투표다. 눈앞에 대선 역시 향후 5년간 우리가 발 붙히고 살 한국사회를 방향타를 결정하는 것이니 장난이 아니다.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문제는 그런 단순도식의 숫자놀음을 넘어선 좀더 심각한 것이 금번 대선의 의미가 될 것이다.
보자. 선거는 자신을 존재케하는 방식을 다중적으로 결정하는 대행사다. 정치의 장속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자신이 부모님의 생활안위를 결정하고, 선생님의 교육관을 결정하고, 친구가 바라는 희망의 가능성을 결정하고, 자기 아이들의 미래세계를 결정하는 것인데 어찌 모른척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잘도 모른 척 하는 것들이 있으니 참으로 대범하다. 그리고 웃긴다.
그림은 그려져 있다. 늘 그렇듯이 세상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발전해 봤고, 박정희1번과 박정희 2번의 대선이나, 전두환1번과 전두환 2번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던 시대는 다행스럽게 지나갔다. 그 과정 속에 뿌려진 피와 땀과 눈물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만들었을지언정 눈물나도록 고맙게 역사는 살아있었다.
비록 비루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수구반동스런 대표도 나왔지만, 양심적인 삶의 태도를 정치정념으로 삼는 중도 리버럴틱한 이도 나왔고, 그야말로 자본의 자율만을 자유라고 믿는 무계한 자본가의 자식도 출마를 한다고 한단다. 그리고 세상을 노동하는 노동자의 세상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도 출사표를 던졌다.
그대들이 선택의 폭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아니 도리어 황량한 사막에 가운데 집 지을 터를 정해야하는 황망함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미국같이 저열하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이들이 사는 너르고 황망한 땅에서야 원래가 최악과 차악의 선택만이 존재했던 터라, 그런 유치한 선택사항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될 수밖에 없는 것에 반하면 이땅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차례인가? 정치를 속물들의 잔치로만 매도하는 이들의 고고함을 엿보면 한탄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매도하는 이들의 나태함과 또 다른 속물적 발정을 매도할 생각은 없다. 또한 그런 매도의 원인이 바로 자신스스로의 비할데 없는 죄값임을 말할 생각도 없다. 입만 아프고 필자 역시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하는 뻔한 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우리에겐 기회가 있었다는 그것 말이다.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미국부대앞에서 미제 용병노릇이나 하게 될 일을,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는 교과서로 썩어빠진 이들이 씨부린 졸열한 단어나부랭이만 외우게 될 일을,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압구정 저질놀음꾼들의 노리개나 피땀으로 만들어 갖다 바치는 짓거리 할 일들을 반복하게 되는 데 누구를 탓하란 말인가. 그러니 그런 헛수작은 하지말자. 한번 도장찍기가 종국에 해낼 일은 의외로 크다. 이건 상식이다. 바다는 그냥 이루어지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강이 수많은 시내가 수많은 옹달샘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3. 네가 서있는 자리대로 찍어라.
일전에 어떤이는 자신의 신념대로 찍으라고 일갈하더라. 아흡아홉번 옳은 이야기다. 다만 자신의 신념이라는 있다면 말이다. 자신을 보라.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거 걱정, 앞으로 살 집이 걱정, 자식새끼 퍼다 먹일 참고서와 과외선생 품삯걱정에 허리가 휘면서 그저 남들 따라서, 고향이 같다고, 자기는 생전 가 본적도 없는 좋은 학교출신이라고 꾹꾹 찍어된다면, 그리고 그걸 지딴에는 신념이랍시고 나불댄다면 그 따위 언어도단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남들한다고 다 따라하면 패가망신이니 참아야 할 것이고, 고향이 같다고 찍겠다면 고향 옆집 아저씨 아줌마가 출마할때까지 참아야 할 것이다.
그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뭐냐고? 뭔기 뭐겠나. 당연히 자신의 자리대로, 계급대로 찍어라이다. 적어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계급을 넘어, 역사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신념이 있는 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다. 그대들에게 무얼 더 바라랴. 그냥 그것으로도 충분히 역사는 그대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땅에는 보수가 없다. 적어도 보수 정치의 신념조차 없다. 그러니 이회창같은 자본사회의 파수꾼이 보수를 흉내댄다. 그가 진짜 보수라면 그 아들이 뼈다귀만 남은 시체라도 군대는 일단 보냈을 거다. 그러나 당연히 그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근대적 국가관 사로잡힌 보수주의자들하고 하등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도리어 한술 더 뜬다. 이회창은 자신이 아들이 군대가 가지 않은 것에 무슨 이야길 하던가. 놀랍게도 그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 더러운 이야기가 자신이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자신의 수족들의 손에만 그 자인한 피를 묻히고 있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믿는 이 땅의 당당한 보수주의자들이여. 당당한 보수주의자를 찍어라. 엉뚱한 곳애 삽질하지말고.
말이 나 온김에 그의 자리를 보자. 그가 어떤 부드러운 수사로 말을 꾸미던간에 그의 진실은 북한을 몰아부쳐서 무릎을 꿇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것이 최선이 방법인가. 그것을 믿는 다면 당장 그를 지지하고 또한 미국이 약소국에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서도 극력지지하라. 그것은 기본적인 일관성 아닌가. 그가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통일로 얻을 이익이 있을까? 생각해보라.
그는 부유세따위는 생각조차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그는 부자에겐 자신의 재산이 어느 누구의 노동과 수고와도 관계맺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바란다. 부자는 영원한 부자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대도 그걸 믿는가? 그럼 그를 찍어라. 그러나 부자라는 위치가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돌아갈 이익의 우연찮은 결과라고 믿는다면 그는 우리의 대표될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라.
그러면 중도는 있는가. 중도라는 그 해괴한 단어를 누구는 화합이라고 한다. 화합...좋다. 그럼 과연 누가 양보할 것인가. 만약 당사자 입장에서는 결코 양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노무현은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그가 하는 말이 그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데는 별로 의심이 없다. 그러나 그의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구체화되었을 때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린 의심을 풀지 못하는 거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저 노무현의 아들, 딸이 디제이의 홍삼형제의 그짝 나는 것이 아니다. 디제이의 표리부동함과 애매모호함이 결국 너무도 장한 가시적인 여러 성과조차 국민에게 보여줄 겨를이 없었던 것이고, 결국 그 아들놈들의 짓거리에 그 장한 성과들은 덮어졌던 것 아닌가.
노짱이라고까지 불려지는 그가 누구의 짱이여야 하는가를 그는 내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만약 임기 말년까지 다수를, 국민의 다수를 그의 편으로 만들어만 놓는다면 그의 가족이 잘못한 일로 사과할 때 국민들은 흔쾌히 받아 드릴 것이다. 막말로 이회창 아들 건으로 이회창에게 시비거는게 연좌제면, 홍삼형제건의 디제이에게 시비거는 것도 연좌제아닌가.
문제는 그런 잡다한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무소신에 자신감 없슴이 결국 디제이를 포박했고, 노무현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민노당이라고 약한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큰 그림의 전략적인 측면보다는 전술적으로 국민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도 그 문제를 인식하지만 대안을 못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인물이 없는가. 누군가 해줄 사람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손을 벌려라. 국민에게 손을 벌려라. 그런데 그게 권영길 혼자의 원맨쇼여서는 답이 없다. 자본의 정당. 권력의 정당이 아니라 사람의 정당이라면 사람을 모아라. 자본이 자본을 부르고 권력이 권력을 꼬드긴다면 사람을 모으는 데는 사람밖에 없다는 걸 잊지말자.
대중을 이끄는 다수의 정당으로 서고 싶다면 정치를 정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온데 만데 끼어들어라. 하지만 다시 다짐받자. 권영길 혼자서는 안된다. 권영길 혼자서 영화관가고 콘서트가봤자 세발의 피다.
4. 쿨하게
시절은 늘 하수상했다. 하수상하지 않으면 세상이 아니다. 늘 그랬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세상을 놓치지 않고 싶고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때가 바로 젊음이다. 그런 젊음은 남다름을 요구한다. 남을 뛰어넘는 원시적 경쟁들을 넘어선, 또 다른 형식의 생명력을 찾고 싶어한다. 그런 징후를 그대들은 ‘쿨’하다고 표현한다. 단순 경쟁을 넘어선 승리, 그래서 그저 남을 짖밟고 이겨내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가 그저 시대를 거스르는 원시인들의 추잡한 몸부림으로 보이는 거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계획된 오해임을 직시하라. 진짜 쿨하고 싶다면 자신을 자리를 내려다 보라. 그곳에 진실이 있다. 자신의 기초를 인식하라.
한 장의 투표용지로 세상을 다 바꿀 수 없다면 하나도 쿨하게 않고 옹색해 보일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단세포에겐 참으로 맞는 말이다.
수구의 대표라는 자가 어쩐지 스마트해 보일 수도 있다. 중도의 자리에서 화합과 정의을 실천하겠다는 이가 무능해 보일 수도 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한치의 세상 어려움도 모르고 살던 자본가의 아들이 왠지 능력충만해 보인다면 그것도 인정하다. 일한자에게 일한 가치를 돌려주겠단 사람이 어쩐지 돈키호테같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다그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감각이 옳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지 말자. 들어보라. 읽어보라. 게임 한판하는 시간만 내어도 그들의 무슨 이야기하는 지 뻔하게 보인다. 대다수 티비 오락프로가 중학생의 지적학력이면 완전히 이해가능한 수준을 제작된다. 좀 다 폼잡은 각종 시사프로 역시 고등학생 이상의 지성을 요하진 않는다. 정치가 바로 그 수준이다. 그 수준을 따라잡을 털끝같은 애도 쓰지 않고 그저 ‘정치에는 관심없다’ 무식한 작태를 쿨하다고 오해한다면 그건 자신을 파괴하고 역사를 거스르는 범죄다.
잘해야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준의 대한민국정치에 지쳐버린다면 그것을 원했던 족속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멍청이임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티비토론에 나오는 저열아 저질 정치인을 솎아내라. 그들이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음을 온몸으로 거부해야 한다.
지금 티비를 틀고 신문을 읽어보라. 심지어 그것이 조선일보같은 썩은 생선을 싸버리는 데 쓰기에도 아까운 저질찌라시라도 좋다. 단지 속지만 말고 그 정치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들어보라. 그 정도에 속아 넘어 갈 것 같다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밥숟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나 자신을 표하는 일은 쿨하고 멋진 일이다. 투표는 가난한 양로원의 할머니도 하고 거너편 담배가게 아저씨도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쿨하고 멋질 수 없진 않다. 내 자신을 표하고 내 자신을 똑바로 인정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쿨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길 원하는 세계를 결정하는 거, 그것 얼마나 쿨한가. 양담배 꼬나물고 스포츠카 타는 것만 쿨한 것이 아니다. 누가 뭐라든 입에 맞는 양담배를 피는 것도 쿨하고, 점심값 아끼며 모은 알바비로 월부 스포츠카를 사는 것도 딴에는 쿨하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를 결정하는 것만큼 쿨한 것에는 비할바가 아니다.
더구나 2002년 오늘날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절대절명 순간이다. 북한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여기에 가장 큰 변수인 미국의 존재에 대해 그간 한마디 댓구도 못하던 무능한 허수아비정부들을 보노라면 우리의 미래가 전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 아닌가 불안감도 크다.
역사는 지금껏 알게 모르게 열심히 진보해왔다. 덕분에 대통령 욕도 내놓고 하고, 백색전화가 재산2호이던 시대가 구한말처럼 느껴지게 만든 일인일손전화시대도 누리고 있다. 광주항쟁을 폭도라고 일컫는 댓가로 일등이니 특등이니 잡소리를 늘어놓던 찌라시들이 움찔거리면 당황해 하는 모습도 보고있다. 이렇게 맘놓고 피씨방 들락거리는 건 전방의 국군아저씨뿐 아니라 수많은 민중들의 피땀덕분이다.
이렇게 겨우겨우 챙겨놓은 역사의 진보를 다시 수십년 전으로 되돌릴 추태를 지금 우리가 범해선 안된다. 다시 군바리들이 총칼로 의사당을 청와대를 방송국을 뒤엎는 짓거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또 다른 변신술로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수 십년전 반민중쿠데타를 허용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건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 우리의 실수로 인해 우리가 참아내야 할 살과 피가 또 얼마나 될 런지는 상상도 하기 싫다.
이 순간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때가 전쟁이 나고 경제가 개판쳐도 해외로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살 보장이 벌써 되어 있는 인간이라면 내 말을 뒷구녕을 들어주어도 하나 서운한 거 없다. 그러나 나랑 같이 이 땅에서 지지고 터지고 살아야 할 인간이라면 결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마라.
세상을 바꾸어 자신을 지키는 노력. 그것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세계는 기초이자 과정이자 답이다. 비록 자신이 만든 세상이 아니라고 포기하는 몽매한 짓을 하지 말자. 자신이 결론을 못 낸다고 주눅들지도 말자. 과정으로도 충분히 쿨하고 아름답고 멋지다.
진짜 쿨하고 싶다면 기초부터 튼튼하게 하자. 별로 어렵지도 않다. 투표장가기전에 스타그래프트 한판할 시간만 투자해서 누가 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해 덜 치졸했는지만 보라.
Posted by 버디


